꺾이지 않는 고집인가, 길들지 않은 야생인가 : 바로와 이스라엘
성경은 하나님을 대적하거나 그분의 뜻에 저항하는 인간의 상태를 묘사할 때 매우 감각적이고 구체적인 단어들을 사용합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출애굽의 거대한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두 부류, 즉 이집트의 제왕 바로(Pharaoh)와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입니다.
성경은 바로를 향해 ‘완악하다’고 진단하고, 이스라엘을 향해서는 ‘목이 뻣뻣하다’고 꾸짖습니다.
이 두 표현은 비슷해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하나님을 거스르는 인간의 서로 다른 두 가지 영적 질병을 날카롭게 파헤치고 있습니다.
1. 바로의 완악함: 성벽이 된 마음 (Hazaq & Kaved)
먼저 바로의 ‘완악함’을 뜻하는 히브리어 ‘하자크’는 본래 ‘강하다’, ‘견고하게 고정되다’라는 뜻입니다. 이는 외부의 충격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도록 마음의 빗장을 단단히 걸어 잠근 상태를 의미합니다.
또 다른 단어인 ‘카베드’는 ‘무겁다’ 혹은 ‘둔하다’는 뜻으로, 하나님의 재앙이 쏟아져도 영적 감각이 마비되어 아무런 통증이나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를 보여줍니다.
바로에게 하나님은 ‘정복해야 할 대상’이거나 ‘무시해도 될 타자’였습니다. 그의 완악함은 하나님을 자신의 삶에 개입시키지 않겠다는 존재론적 거부였습니다. 그는 열 가지 재앙이라는 강력한 증거 앞에서도 마음의 성벽을 더 높이 쌓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이 보여주는 전형적인 교만, 즉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내 인생의 주인은 나다”라고 외치는 영적 독재자의 모습입니다.
2. 이스라엘의 뻣뻣함: 길들지 않은 고집 (Qasheh)
반면, 시내산 아래에서 금송아지를 만든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이 사용하신 ‘목이 뻣뻣하다(케셰 오레프)’는 표현은 전혀 다른 뉘앙스를 풍깁니다. 이는 농부가 쟁기를 끌기 위해 소의 목에 멍에를 씌우려 할 때, 소가 목 뒷덜미에 힘을 꽉 주고 버티며 고개를 숙이지 않는 모습을 비유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바로처럼 하나님을 모른다고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홍해를 건넜고, 매일 아침 만나를 먹었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의 통치(멍에)를 받기 싫어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되 ‘자기 방식대로’ 섬기길 원했습니다. 주인이 가자는 방향이 아닌, 자신이 가고 싶은 방향으로 고집을 부리는 영적 야생마의 상태, 그것이 바로 ‘목이 뻣뻣함’의 본질입니다.
3. 우리 안의 두 얼굴: 대적과 불순종 사이
우리는 흔히 바로와 같은 악한 통치자들만이 하나님을 거스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우리 안에도 ‘목이 뻣뻣한’ 이스라엘의 DNA가 흐르고 있음을 경고합니다.
바로의 완악함이 하나님을 향한 ‘정면 대결’이라면, 이스라엘의 뻣뻣함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삶의 주도권은 결코 내어놓지 않는 ‘교묘한 거부’입니다. 주일에는 예배를 드리지만,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세상의 가치관이라는 고집스러운 목을 세운 채 주님의 인도하심을 밀어냅니다.
“하나님, 복은 주시되 제 삶을 통제하지는 마십시오”
라는 태도가 바로 현대판 ‘뻣뻣한 목’입니다.
4. 꺾여야 산다, 숙여야 간다
완악했던 바로의 끝은 홍해 바다에서의 ‘파멸’이었습니다. 그는 끝까지 꺾이지 않다가 결국 부서졌습니다. 하지만 목이 뻣뻣했던 이스라엘은 광야 40년이라는 혹독한 ‘길들이기’ 시간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의 목에서 힘이 빠질 때까지, 그들이 주님의 멍에를 편안하게 받아들일 때까지 광야의 학교에 머물게 하십니다.
하나님을 대적하여 마음을 단단한 바위처럼 굳히는 완악함도, 하나님의 세밀한 인도하심을 거부하며 목을 빳빳이 세우는 고집도 결국 우리를 영적 고아로 만들 뿐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부드러운 마음’과 ‘숙여진 목’입니다.
주님의 손길이 닿을 때 즉시 반응하는 민감함, 그분이 이끄시는 대로 기꺼이 방향을 트는 유연함이 성도의 실력입니다. 뻣뻣한 목에 힘을 빼고 주님의 멍에 아래로 고개를 숙일 때, 비로소 우리는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는 참된 자유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바로는 하나님을 부정하느라 마음을 굳혔고, 이스라엘은 자기를 고집하느라 목을 세웠습니다. 오늘 당신의 목은 주님의 멍에 앞에 부드럽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