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백성들이 머물던 거친 광야, 그 한복판에 세워진 성막에서는 날마다 신비롭고 강렬한 향기가 뿜어져 나왔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짐승을 태우는 냄새를 가리기 위한 방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설계하신 ‘거룩한 관유(Anointing Oil)’에서 비롯된 하늘의 향기였습니다.
출애굽기 30장 22절에서 33절에 기록된 이 관유의 규례를 통해, 오늘날 우리 삶이 지향해야 할 거룩함의 본질을 묵상해 봅니다.
소유권을 선포하는 기름, ‘쉐멘 함미쉬하’
관유를 뜻하는 히브리어 ‘쉐멘 함미쉬하(שֶׁמֶן הַמִּשְׁחָה)’는 단순히 ‘바르는 기름’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어근인 ‘마샤흐’는 ‘바르다’, ‘문지르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기름이 대상의 표면에 완전히 스며들어 그 존재의 성질을 바꾸어 놓음을 상징합니다.
성막의 기구들과 제사장들의 몸에 이 기름이 발라지는 순간, 그것들은 더 이상 광야의 평범한 물건이나 사람이 아니게 됩니다. 관유는 하나님의 소유임을 증명하는 법적인 ‘인장(Seal)’이었습니다. 기름이 스며든 모든 곳에 하나님께서는 “이것은 이제 내 것이다”라는 거룩한 소유권을 선포하셨습니다.
우리의 신앙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우리 영혼에 깊숙이 스며들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의 가치관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상등 향료가 빚어낸 거룩의 조화
하나님께서는 관유를 만드실 때 액체 몰약, 육계, 창포, 계피라는 네 가지 상등 향료를 감람유와 섞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단어는 ‘최상’을 뜻하는 ‘로쉬(רֹאשׁ)’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함은 우리의 남는 것이나 대충 만든 것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가장 귀하고 순수한 중심이 모여 거룩이라는 신비로운 조화를 이루어냅니다.
몰약의 희생, 육계의 달콤함, 창포의 정결함, 그리고 계피의 강인함이 감람유 안에서 하나가 될 때, 비로소 세상이 흉내 낼 수 없는 ‘여호와의 향기’가 완성됩니다.
거룩함은 지루하거나 무미건조한 상태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성품들이 우리 인격 안에서 아름답게 어우러져 나타나는 영적인 풍요로움입니다.
사람의 몸에 붓지 말라: 구별의 엄중함
관유에 관한 규례 중 가장 단호한 명령은 “이 기름을 사람의 몸에 붓지 말며, 이 방법대로 똑같은 것을 만들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인간의 사적인 욕망이나 명예를 위해 이용하지 말라는 엄중한 경고입니다.
거룩함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스며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나의 유익을 위한 도구로 삼으려 할 때, 그 향기는 곧 악취로 변하고 맙니다. 오직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분의 일을 감당하기 위해 자신을 구별하는 자에게만, 이 신비로운 관유의 향기는 허락됩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서는 어떤 향기가 나는가
오늘날 우리는 눈에 보이는 관유를 몸에 바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의 보혈과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라는 더 완벽한 ‘하늘의 관유’가 임해 있습니다. 우리가 닿는 곳마다, 우리가 머무는 자리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에게서 배어 나오는 향기를 맡습니다.
나의 성취를 자랑하는 인간의 향취입니까, 아니면 나를 통해 드러나는 그리스도의 거룩한 향기입니까? 거룩은 격리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관유가 발라진 제사장이 광야를 걸어갈 때 그 향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것처럼 일상 속에서 증명되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 인생의 모든 기구와 시간 위에 하나님의 관유가 부어지기를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걷는 모든 발걸음이 세상을 정결케 하는 지성소가 되고, 우리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는 가장 아름다운 향기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한 줄 묵상: 거룩함은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 안에 머물 때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는 하늘의 흔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