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30장을 묵상하다 보면 가슴이 서늘해지는 구절을 만나게 됩니다. 인구 조사할 때 ‘생명의 속전’을 내지 않으면 질병(재앙)이 임할 것이라는 경고입니다(출 30:12). 단순히 숫자를 세는 일이 왜 죽음과 직결되는 무서운 일이 되었을까요? 이 고대 규례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두 가지 날카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1. 숫자의 함정: 통계인가, 교만인가?
성경에서 인구를 세는 행위(계수)는 곧 ‘소유권’의 주장을 의미합니다. 목자가 자기 양의 숫자를 세고, 왕이 자기 군대의 머릿수를 확인하듯, 누군가를 계수한다는 것은 그 대상을 자기 통치 아래 두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이스라엘의 진짜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만약 지도자가 하나님의 명령 없이, 혹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속전’ 없이 인구를 조사한다면 그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이 백성은 나의 군대요, 나의 힘이다”라는 인본주의적 선언이 됩니다. 다윗 왕이 노년에 인구 조사를 강행했다가 7만 명의 백성을 전염병으로 잃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숫자에 마음을 빼앗기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이 아닌 ‘나의 세력’을 의지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2. 질병의 신호: 주권의 이탈을 경고하다
본문은 속전을 내지 않으면 ‘그들 중에 질병이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그들’은 계수함을 받는 백성들입니다. 왜 하나님은 숫자를 세는 지도자뿐 아니라 조사받는 백성들에게까지 책임을 물으실까요?
그것은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가 ‘하나님의 소유’라는 정체성을 잊지 말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속전(몸값)을 내는 행위는 “주님, 저는 제 힘으로 사는 자가 아니라 주님이 피 값으로 사신 주님의 것입니다”라는 자기 고백입니다. 이 고백이 사라진 공동체는 영적 보호막이 걷힌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주인 되심을 거부하는 교만은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가장 무서운 ‘영적 전염병’이 되어 돌아옵니다.
3. 반 세겔의 평등: 우리 모두는 ‘은혜의 빚진 자’
놀랍게도 하나님은 부자나 가난한 자나 똑같이 ‘반 세겔’을 내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은 사람의 가치를 연봉이나 사회적 지위로 계수하지만, 하나님의 생명책에는 모든 영혼이 똑같은 ‘반 세겔’의 무게로 기록됩니다.
우리는 모두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었으나, 예수 그리스도라는 가장 존귀한 ‘속전’을 통해 생명을 얻었습니다. 내가 가진 것이 많다고 해서 하나님께 생명을 빚진 자라는 사실이 변하지 않으며, 내가 가진 것이 적다고 해서 그 가치가 깎이지도 않습니다.
숫자가 아닌 ‘주인’을 바라보십시오
오늘날 우리는 수많은 숫자에 둘러싸여 삽니다. 통장 잔고의 숫자, 아파트 평수의 숫자, SNS의 팔로워 숫자… 우리는 은연중에 이 숫자들이 나를 보호해주고 내 힘이 되어줄 것이라 믿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숫자를 의지하는 마음에는 반드시 영적 질병이 뒤따릅니다. 오늘 우리가 드려야 할 ‘생명의 속전’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내 삶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라는 겸손한 고백입니다. 이 고백이 살아 있을 때, 우리 삶의 모든 재앙은 물러가고 하나님의 온전한 통치가 시작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