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제사장의 옷, 거룩한 구별인가 세속적 계급인가?

 

성막의 설계도를 펼쳐보면 하나님은 참으로 세심한 ‘디자이너’이심을 알게 됩니다. 대제사장 아론에게는 금실과 보석으로 수놓인 화려한 예복을 입히시고, 그의 아들들인 일반 제사장들에게는 순백의 세마포 옷을 입히셨습니다. 시각적으로 분명한 차이를 두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서늘한 진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의도하신 것은 사역의 전문성을 위한 ‘거룩한 구별(Distinction)’이었지, 인간의 우월감을 채우기 위한 ‘세속적 계급(Hierarchy)’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역사 속에서 제사장 제도는 하나님의 설계도를 벗어나 자꾸만 ‘계급의 사다리’를 올랐습니다. 광야의 겸손했던 중보자들은 왕정 시대를 지나며 성전의 막대한 부와 권력을 손에 쥔 기득권층이 되었습니다. 특히 권력이 집중된 ‘대제사장’이라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인간들의 암투는 이스라엘 역사의 가장 어두운 단면을 보여줍니다.

신구약 중간기에서 로마 통치기에 이르는 시기, 대제사장직은 더 이상 거룩한 소명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막대한 부와 정치적 영향력을 보장하는 ‘황금 보좌’였습니다. 하스몬 왕조 시절에는 대제사장직을 차지하기 위해 형제간에 칼부림을 벌였고, 로마의 승인을 얻기 위해 이방 권력자에게 막대한 뇌물을 바치는 매관매직이 성행했습니다. 안나스와 가야바 가문은 이 거룩한 직분을 가문의 비즈니스로 전락시켰으며,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진정한 대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비극을 초래했습니다. 제사장의 옷은 이제 죄를 담당하는 자의 거부할 수 없는 ‘멍에’가 아니라, 피 묻은 권력을 가리는 ‘화려한 가운’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러한 제사장의 계급화는 결국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길’을 막는 장애물이 되었습니다. 오직 자신들만이 하나님을 독점하고 있다는 오만이 싹텄고, 백성들은 그들이 만들어 놓은 거대한 종교적 성벽 아래서 신음했습니다. 하나님이 옷자락 끝에 달아주신 금방울 소리는 이제 하나님을 향한 경외의 소리가 아니라, 자신들의 권위를 과시하고 살아남았음을 증명하는 탐욕의 소음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구약의 제사장 제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단번의 제사로 완성되었고, 이제 우리는 모두가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름받았습니다.

그러나 현대 교회 안에서도 제사장 계급화의 망령은 여전히 살아 움직입니다. 목회직이 ‘섬김의 직무’가 아닌 영적 계급이 될 때, 강단은 복음의 선포대가 아니라 권위의 요새가 됩니다.

현대 목회자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지점이 바로 이곳입니다. 성도들과 자신 사이에 보이지 않는 계급의 선을 긋고, 목회적 배려를 ‘당연한 특권’으로 여기기 시작할 때, 그 순간부터 목회자의 영성은 썩기 시작합니다.

대제사장의 화려한 겉옷 안에 반드시 입어야 했던 ‘베 속바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인간의 수치를 가리고 겸손히 하나님 앞에 서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직분은 ‘계급’이 아니라 ‘기능’입니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사다리가 아니라, 낮은 곳으로 내려가 발을 씻기는 수건이어야 합니다.

성도 위에 군림하며 암투를 벌이던 역사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아야 합니다. 성도의 아픔을 짊어지고 함께 울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목회자의 초심을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가 입은 목양의 옷이 세속의 영광으로 번쩍이는 ‘계급장’이 되지 않도록, 날마다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패를 마음의 이마에 새겨야 할 것입니다.

by 박동진목사(소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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