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봇은 제사장만이 입을 수 있었나?

성경의 수많은 상징물 중 ‘에봇’만큼 제사장의 권위와 하나님의 임재를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드러내는 의복은 드뭅니다. 출애굽기 28장에서 설계된 대제사장의 에봇부터 다윗이 춤추며 입었던 베 에봇에 이르기까지, 이 독특한 옷은 단순한 섬유의 조합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와 헌신을 상징하는 영적인 매개체였습니다.

에봇의 외형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소매가 없는 ‘조끼’나 ‘앞치마’와 흡사한 형태였습니다. 앞판과 뒷판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어깨에서 하나로 이어지며, 허리 부분에는 띠를 둘러 몸에 밀착시키도록 디자인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형태적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에봇은 결코 시장에서 흔히 사 입거나 일상적인 노동 중에 입는 평범한 ‘평상복’은 아니었습니다. 오늘날 판사의 법복이나 성가대의 가운처럼, 에봇은 오직 하나님을 섬기는 직무를 수행할 때만 착용하는 ‘구별된 예복’이자 ‘거룩한 유니폼’의 성격을 띠었습니다.

이러한 에봇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일상 속에서 결정적인 순간마다 사용되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용도는 ‘하나님의 뜻을 묻는 신탁의 도구’였습니다. 대제사장의 에봇 가슴 부분에는 ‘판결 흉패’가 붙어 있었고, 그 안에는 ‘우림과 둠밈’이라는 도구가 들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국가적인 위기나 전쟁의 가부를 결정해야 할 때 에봇을 입은 제사장에게 나아갔습니다. “올라가리이까, 말리이까?”라는 절박한 질문 앞에 에봇은 하나님의 응답을 전달하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즉, 에봇은 단순한 의복을 넘어 이스라엘의 삶을 하나님의 통치 아래 묶어두는 영적인 안테나와 같았습니다.

일반인들에게 에봇은 ‘입는 옷’이라기보다 ‘신성한 힘이 깃든 성물’로 인식되었습니다. 사사기 기록을 보면 미가라는 인물이 개인의 집에 신당을 차리고 에봇을 만들거나, 기드온이 전리품으로 금 에봇을 제작했을 때 백성들이 이를 숭배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는 에봇이 지닌 영적 권위가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거룩한 상징물이 본질인 하나님을 가릴 때 얼마나 위험한 우상이 될 수 있는지를 경고합니다. 에봇 자체가 능력을 가진 것이 아니라, 그 옷을 입고 하나님 앞에 서는 자의 진실함이 본질임을 성경은 강조합니다.

에봇의 본질은 ‘구별됨’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제사장의 에봇은 금 실과 화려한 유색 실로 짜여 ‘움직이는 성소’와 같은 영광을 드러냈습니다.

반면, 다윗 왕은 법궤가 예루살렘으로 들어올 때 왕의 화려한 예복을 벗어 던지고 단순한 ‘베 에봇’을 입은 채 춤을 추었습니다. 다윗이 왕복 대신 제사장 보조자의 옷인 베 에봇을 택한 것은 ‘예배자로서의 겸손’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의 통치자인 그가 하나님 앞에서는 한 사람의 어린아이와 같은 예배자일 뿐임을 고백한 것입니다. 또한 이는 왕이면서 동시에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는 예언적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에봇은 오늘날 우리에게 ‘그리스도로 옷 입음’의 의미를 되새기게 합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이 정교하게 짜인 에봇을 입고 성소로 들어갔듯, 오늘날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겨진 거룩한 흰옷을 입고 하나님 보좌 앞으로 나아갑니다. 우리는 모두 다윗처럼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는 세상의 왕복을 벗고, 주님의 이름을 어깨에 멘 채 세상 속에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아가야 할 부름을 받았습니다.

에봇은 단순한 고대의 의복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시는지, 그리고 우리가 그분 앞에서 어떤 존재인지를 보여주는 거룩한 거울입니다. 우리의 어깨에는 이웃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지, 우리의 가슴에는 하나님의 판결을 구하는 진실함이 있는지, 에봇은 오늘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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