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팔 소리가 기쁨의 노래가 되기까지
우리는 성경에서 50년마다 돌아오는 해방의 해를 ‘희년(禧年)’이라고 부릅니다. 영어로는 ‘주빌리(Jubilee)’라고 하지요. 그런데 혹시 이 단어의 원래 뜻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놀랍게도 히브리어 원어에는 ‘기쁨’이나 ‘복’이라는 뜻이 전혀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 날을 ‘희년’이라고 번역하게 되었을까요?
그 번역 속에 숨겨진 깊은 은혜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1. 히브리어 원어의 뜻: “나팔을 불어라”
희년의 히브리어 원어는 ‘요벨(Yobel)’입니다. 이 단어의 문자적인 뜻은 ‘기쁨’이 아니라 ‘수양의 뿔(ram’s horn)’입니다.
레위기 25장에 따르면, 일곱 번의 안식년이 지난 후 50년째가 되는 해의 속죄일에 제사장은 수양의 뿔로 만든 나팔을 길게 불어야 했습니다. 이 나팔 소리는 온 땅에 자유를 선포하는 신호탄이었습니다. 만약 성경을 문자 그대로 직역했다면, 우리는 오늘날 이 해를 희년이 아니라 ‘각적(角笛)의 해’ 혹은 ‘나팔의 해’라고 불렀을지도 모릅니다.
2. 번역의 지혜: 도구가 아닌 ‘결과’를 보라
하지만 우리말 성경(그리고 그 기초가 된 한문 성경)의 번역자들은 ‘나팔(도구)’이라는 건조한 사실보다, 나팔 소리가 가져온 ‘결과’와 ‘정서’에 주목했습니다.
요벨의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질 때 이스라엘 사회에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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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때문에 팔려 갔던 종들이 사슬을 풀고 자유를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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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으로 인해 팔아버렸던 조상의 땅이 원주인에게 되돌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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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짓누르던 무거운 부채가 말끔히 사라집니다.
이때 사람들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단순히 “아, 나팔 소리가 들리는구나” 정도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곳에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벅찬 감격과 해방의 환호,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이 넘쳐흘렀을 것입니다.
그래서 번역자들은 단순히 즐거운 ‘기쁠 희(喜)’가 아니라, 신이 주시는 복과 경사스러움을 뜻하는 ‘복될 희(禧)’ 자를 써서 ‘희년(禧年)’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직역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복과 기쁨이 가득한 해”라는 뜻입니다. 이는 원어의 문자적 의미를 넘어, 그 본질적인 신학적 의미를 꿰뚫어 본 탁월한 의역입니다.
3. 주빌리(Jubilee)와 환호성
재미있는 사실은 영어 단어 ‘Jubilee’**에도 비슷한 역사가 담겨 있다는 점입니다. 히브리어 ‘요벨’은 라틴어로 음역 되면서 ‘유빌라에우스(Jubilaeus)’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라틴어에는 ‘기뻐 외치다’, ‘환호하다’라는 뜻을 가진 ‘유빌라레(Jubilare)’라는 단어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요벨’의 나팔 소리가 울릴 때 터져 나오는 백성들의 환호성을 떠올리며, 이 두 단어를 자연스럽게 연결했습니다. 그 결과 서구권에서도 Jubilee는 단순한 기념일을 넘어 ‘축제’, ‘큰 기쁨’, ‘환호’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영국 여왕의 즉위 60주년 축제를 ‘다이아몬드 주빌리’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나가는 글
‘희년’이라는 두 글자 속에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단순히 나팔 소리를 듣는 의무를 행하는 것이 아니라, 죄와 억압에서 풀려나 진정한 자유와 기쁨(禧)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우리에게 희년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죄의 빚을 탕감하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자유를 선포하신 그 은혜가 바로 우리의 희년입니다. ‘희년’이라는 단어를 접할 때마다, 나팔 소리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거룩한 기쁨을 묵상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