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효(孝)’라는 단어 앞에서 가슴 한구석이 묵직해지는 경험을 합니다. 특히 유교적 전통이 깊게 뿌리내린 한국 사회에서 성경의 제5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은 때로 자녀들에게 무거운 굴레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도덕적 채찍’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부모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부당한 요구나 인격적 침해 앞에서도 “성경에 공경하라고 했으니 무조건 참아야 한다”는 논리는 과연 하나님의 본심일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성경이 말하는 부모공경은 결코 한쪽의 인격을 말살하는 ‘야만적인 복종’이 아닙니다.
‘공경’은 맹목적 굴종이 아니라 ‘질서의 인정’입니다
십계명에서 ‘공경하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카베드(כַּבֵּד)’는 ‘무겁게 여기다’라는 뜻입니다. 이는 상대의 존재 가치를 가볍게 여기지 말라는 의미이지, 상대의 모든 행위에 동조하거나 부당한 명령에 무조건 따르라는 뜻이 아닙니다.
성경은 부모를 ‘완전한 존재’로 상정하지 않습니다. 부모 또한 하나님 앞에서 치유와 용서가 필요한 죄인임을 전제합니다. 따라서 공경이란 부모의 ‘잘못된 행위’를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이 땅에 존재하게 하신 하나님의 ‘창조적 질서’를 존중하여 그 직분을 예우하는 인격적 태도를 의미합니다.
“주 안에서”라는 거룩한 안전장치
신약 성경은 이 계명을 재해석하며 매우 중요한 단서를 붙였습니다. 에베소서 6장 1절은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명시합니다. 여기서 ‘주 안에서’는 공경의 범위와 한계를 정하는 거룩한 가이드라인입니다.
부모의 요구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법을 벗어날 때, 혹은 자녀의 신앙과 인격을 파괴하는 수준에 이를 때, 자녀는 ‘주 안에서’ 분별할 권리가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부모를 더 두려워하거나, 부모의 죄악된 습관에 동참하는 것은 진정한 공경이 아니라 오히려 또 다른 우상숭배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에게 주어진 엄중한 책임: “노엽게 하지 말라”
하나님은 결코 자녀에게만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5계명의 짝을 이루는 말씀은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4)”는 부모를 향한 명령입니다. 성경적 권위는 군림하는 권력이 아니라 섬기는 책임입니다. 자녀를 부모의 소유물이나 감정의 배설구로 여기는 것은 하나님의 대리자로서의 직무유기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인격적으로 대우하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양육할 책임과, 자녀가 부모를 공경할 책임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가야 하는 ‘상호적 언약’입니다.
복음, 상처 입은 자녀를 향한 하나님의 답
혹시 부모로부터 깊은 상처를 입어 ‘공경’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숨이 막히는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은 당신의 고통을 무시한 채 “그래도 부모니까 공경하라”고 다그치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부모에게 받은 상처로 신음하는 자녀들을 향해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시 27:10)”라고 말씀하시며 우리의 참부모가 되어 주십니다.
진정한 공경은 내 힘으로 억지로 쥐어짜내는 효도가 아닙니다. 내가 먼저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 안에서 치유받고, 그 사랑의 넉넉함으로 부모라는 한 연약한 인간을 불쌍히 여기는 ‘긍휼의 마음’을 갖게 될 때 비로소 시작됩니다. 때로는 물리적, 심리적 거리를 두는 것이 서로를 지키는 공경의 한 형태가 될 수도 있습니다.
부모 공경은 야만적인 희생 제사가 아닙니다. 그것은 깨어진 인간관계 속에서도 하나님의 질서를 신뢰하며, 미움과 증오 대신 용서와 예우를 선택함으로써 우리 삶에 진정한 평화를 일궈내라는 하나님의 초청입니다.
일방적인 요구에 짓눌리지 마십시오. 당신의 참부모이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유하며, 그 자유함으로 부모를 대할 수 있는 건강한 영성이 우리 모두에게 회복되기를 소망합니다.
by 박동진목사(소토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