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인가, 자유인가? – ‘대심문관’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문득 이런 의문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왜 침묵하시는가? 당장 기적을 보여주시면 온 세상이 믿을 텐데, 왜 우리를 이토록 힘들고 헷갈리게 내버려 두시는가?”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걸작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는 기독교 문학 사상 가장 충격적이고도 깊이 있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바로 무신론자인 형 ‘이반’이 신실한 수도사 동생 ‘알료샤’에게 들려주는 <대심문관> 이야기입니다. 오늘 이 이야기를 통해 참된 믿음이 무엇인지 함께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1. 16세기 스페인, 다시 오신 예수님을 체포하다
이야기의 배경은 종교재판이 서슬 퍼렇던 16세기 스페인 세비야입니다. 그곳에 예수님이 조용히 재림하십니다. 그분은 예전처럼 병자를 고치고 사람들을 위로하시지만, 당시 교회의 절대 권력자인 90세의 대심문관(추기경)은 즉시 예수님을 체포해 감옥에 가둡니다.
그리고 칠흑 같은 밤, 대심문관은 감옥으로 찾아와 예수님을 심문합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왜 방해하러 왔느냐”며 꾸짖습니다.
2. “당신은 인간을 너무 과대평가했소”
대심문관의 논리는 섬뜩하리만큼 현실적입니다. 그는 광야에서 사탄이 예수님께 던졌던 ‘세 가지 유혹’을 언급하며, 예수님이 그것을 거절한 것이 실수였다고 비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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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유혹: 돌을 빵으로 만들라. 대심문관은 말합니다. “인간에게 자유는 고통일 뿐이오. 그들은 자유를 반납하는 대가로 배를 불려줄 주인을 원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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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유혹: 성전에서 뛰어내려 기적을 보이라. “인간은 기적을 숭배하오. 당신이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고 고통을 감내했을 때, 당신은 인간의 믿음을 너무 높게 평가한 것이오. 인간은 명백한 증거 없이는 믿지 못하는 약한 존재란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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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유혹: 세상의 권력을 가지라. “그래서 우리(교회)는 당신이 거절한 로마의 칼(권력)을 잡았소. 우리는 기적과 신비, 권위로 인간을 복종시켜 그들에게 안락한 행복을 주었소. 그런데 왜 이제 와서 그들에게 감당 못 할 ‘자유’를 다시 주려 하시오?”
그의 주장은 명확합니다.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을 선택할 만큼 강하지 않다. 그러니 빵과 기적으로 통제해 주는 것이 인간을 위한 진짜 사랑이다.”라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의 대답: 논리를 뛰어넘는 ‘입맞춤’
대심문관의 긴 독백이 이어지는 동안 예수님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으십니다. 그저 듣고만 계십니다. 대심문관이 “내일 너를 화형에 처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말을 마쳤을 때, 예수님은 조용히 일어나 늙고 메마른 대심문관에게 다가갑니다.
그리고 그의 입술에 온화하게 입을 맞추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대답이었습니다. 어떤 논리적 반박도, 변명도 아니었습니다. 자신을 거부하고 왜곡하고 심지어 죽이려는 자에게까지 베푸는 무조건적인 사랑과 용서, 바로 십자가의 사랑을 행동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 예상치 못한 입맞춤에 대심문관은 전율합니다. 그는 결국 감옥 문을 열며 말합니다.
“가시오… 그리고 다시는 오지 마시오.”
4. 묵상: 좁은 길을 선택할 자유
이반 카라마조프는 이 이야기를 통해 “신이 만든 세상의 부조리함”을 고발하려 했지만, 도스토옙스키는 역설적으로 기독교의 본질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빵’ 때문에 복종하는 노예로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기적을 보여주며 억지로 무릎 꿇리지도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고뇌하고 의심하면서도, 자유로운 의지로 당신을 사랑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것이 비록 고통스러운 ‘좁은 길’일지라도, 그 안에 진정한 인간의 존엄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종 대심문관처럼 확실한 보장, 눈에 보이는 기적, 편안한 신앙생활을 원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오늘 밤, 침묵 속에 우리에게 입 맞추시며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의 맹목적인 복종이 아니라, 자유로운 사랑을 원한다. 빵으로 사는 삶이 아니라, 말씀으로 사는 삶으로 너를 초대한다.”
오늘도 눈에 보이는 증거가 없어 답답하신가요? 세상의 빵이 부족해 불안하신가요? 예수님의 침묵은 무관심이 아닙니다. 우리를 인격적으로 대우하시는 하나님의 깊은 신뢰이자 사랑의 기다림입니다.
그 사랑을 신뢰하며, 기적을 좇는 신앙이 아니라 사랑을 선택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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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기도합시다: 주님, 우리는 때로 자유의 무게가 버거워 세상이 주는 빵과 안락함 뒤로 숨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우리를 로봇이 아닌 자녀로 부르신 그 깊은 뜻을 기억하게 하소서. 눈에 보이는 기적이 없을지라도, 주님의 입맞춤 같은 세미한 사랑을 느끼며 자발적인 순종의 길을 걷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