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군
골 1:1-8
오늘은 우리가 매월 한번씩 드리는 선교 헌신 예배로 드립니다.
오늘날 성도들 가운데 보면 어떻게 하면 편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헌신’이란 말은 끔찍하게 들입니다. 교회에 깊이 참여하기를 꺼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안일 수가 없습니다. 옛날에는 어떻게 하면 교회를 위해서 봉사할 수 있을까 하여 일할 수 있는 교회를 사모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까?
추수할 곡식은 많은데 헌신적으로 그리고 열심히 일하기를 원하는 일군이 너무도 부족한 때가 바로 오늘 이 시대인 줄로 압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더 심한 것 같습니다. 옛날 주님 당시에도 이러한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9:37-38절에 보면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은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자리에 나온 우리 모두가 다 일군으로 보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또 우리가 보내 달라고 구할 것이 아니라 이제 우리가 헌신된 좋은 추수꾼들이 되기 위해서 먼저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할 일이 많기 때문에 함께 도와서 일할 일군들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보내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보면 사도 바울은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하는 말이 ‘내가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너희를 위해서 기도할 때마다 감사할 것이 많은데 그 중에서 특히 세 가지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첫째가 성도들의 믿음입니다.
둘째가 성도들의 사랑입니다.
셋째가 성도들의 소망입니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감사하였는데, 거기서도 보면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 이 세 가지를 말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것을 보면 병이 나았다든지, 자녀가 일류 학교에 합격했다 던지, 좋은 직장에 취직을 했다든지, 사업이 잘된다든지, 아들을 낳았다든지, 집을 하나 장만했다 던지, 그저 육신 생활에 관한 것이 태반이었습니다. 물론 감사할 일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귀하고 감사해야 할 것은 믿음과 사랑과 소망을 인해서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감사드려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으로 영생을 얻게 된 사실에 대해서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 헌금 들여 보셨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에 힘입어 살게 된 것을 감사해 보았습니까?
또한 이 땅에 소망을 두지 않고 영원한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살게 된 것을 감사해 보셨습니까? 먼저 이로 인해 감사가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골로새 교회에 이렇게 훌륭한 성도들이 생기게 된 것이 우연히 된 것이 아니다.
5절에 보면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들었다’고 하는 것은 귀로 듣기만 하고 끝났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새기고 믿음에 확고히 서서 순종의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믿음의 성장이 있어 다는 것입니다.
6절을 보세요.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 도다”라고 했습니다. 믿음의 성장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고, 순종하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즉 열매 맺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말합니다.
그러면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누구에게서 배웠습니까?
7절에 보면 “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종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그는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라고 했습니다.
그들을 가르친 사람은 사도 바울이 아니라 바로 ‘에바브라’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어떤 사람입니까?
‘우리와 종된 자’라고 했습니다. 바울과 디모데와 같이 그리스도의 종이 였습니다.
사람의 종이 아닙니다. 물질의 종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종이란 말입니다.
그는 골로새 인으로서 바울의 전도로 예수 믿고 바울의 가르침으로 받아 그 믿음이 성장하여 열심히 봉사하며, 열심히 전도하되 자발적으로 바울과 디모데를 충성스럽게 돕고 일하는 좋은 일군이었습니다.
좋은 일군이란 내가 하나님의 일을 직접 하는데서 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된 하나님의 종을 잘 돕는데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에바브라’는 그리스도의 종이라 인정을 받기 전에 먼저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길러 준 바울을 잘 도와서 일하였습니다. 여기서 인정을 받은 후에 비로써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인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갈렙이 훌륭한 하나님의 종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단번에 된 것이 아닙니다. 먼저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쳐 준 모세를 도와서 충성스럽게 일하여 그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거의 40년 동안 모세의 시종으로 충성합니다.
그 후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고 여호수아를 모세의 후계자로 세우셨고 비로써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하나님의 종으로 인정하십니다.
수1:1절을 보면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시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라고 했습니다.
주의해서 보면 두 사람이 나옵니다. 하나는 ‘여호와의 종 모세’요, 그리고 다는 하나는 ‘모세의 시종 여호수아’라고 했습니다.
사실은 모두가 다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그러나 엄격히 구분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먼저 된 하나님의 종 모세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고는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충성스러운 종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사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기까지는 ‘나는 모세를 도와서 일하는 모세의 시종이 되어야 한다’는 하나님의 뜻을 겸손히 따른 분입니다. 그 동안에는 ‘하나님의 종’이라는 생각도 먹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그러나 누구를 도와서 일하는 일군인가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왜 교회 안에서 거역하고 불순종하는 일이 생깁니까?
우리는 지도하는 분들을 도와서 일하는 일군들이라는 겸손한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돕는 일군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는 하나님의 종이라고 인정받기는 더욱 더 어려운 것입니다.
2절에 보면 ‘에바브라’는 신실한 그리스도의 일꾼이라고 사도 바울에게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신실’하다는 것은 ‘충성’을 의미합니다.
특히 생활에 있어서 진실함을 말합니다. 신앙이란 그럴듯한 논리가 아닙니다. 아름다운 말이나 선한 행동이 아닙니다. 신앙은 진실한 성도의 생활입니다. 그러므로 잘했던 못했던 진실이 결여된 것은 하나님께서 받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진실을 기뻐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함께 하시는 사람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문벌 좋은 사람도 아닙니다. 부귀 권세가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열심히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의 열심입니다. 헬라어에 ‘믿음과 충성과 진실’이라는 말의 원어는 다 같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진실의 사람이요, 충성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시15:1-2절에 보면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 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천국에 합당한 사람은 정직하고 진실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예).유명한 베스탈로찌는 ‘아무리 그대가 지위 있고 지식이 많다 해도 진실을 잃는다면 그 지위도, 지식도 그대의 몸에 붙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슥8:19절에 보면 “…..너희는 진실과 화평을 사랑할지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수2:12하반 절에 보면 “….이제 여호와로 맹세하고 내게 진실한 표를 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에 진실해야 합니까?
내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에 대하여 진실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평범한 일에 대해서는 진실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죄에 대해서는 진실하지 못하고 언제나 은폐하려고 합니다. 회개란 무엇입니까? 바로 나의 죄에 대한 진실한 고백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 없이 구원 없고, 회개 없이 구원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죄에 대한 진실한 고백이 얼마나 중요한 것임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엡5:8-9절에 보면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빛의 열매 곧 하나님의 자녀 된 증거는 ‘진실함’에서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그러고 진실히 행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축복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왕상2:4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내 일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만일 네 자손이 그 길을 삼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진실히 내 앞에서 행하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신 말씀을 확실히 이루게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진실히 행하는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그리고 진실한 자가 승리합니다.
계17:14절에 보면 “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 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진실한 자와 항상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죄와 싸워 승리할 수 있습니다.
불의와 싸워 이길 수 있습니다. 마귀와 싸워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겔18:9절에 보면 “내 율례를 좇으며 내 규례를 지켜 진실히 행할진대 그는 의인이니 정녕 살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했습니다. 진실한 믿음으로 나갈 때에 살 길이 열릴 주로 믿습니다. 모든 문제가 해결 될 줄고 믿습니다.
진실하고 충성된 믿음의 사람은 맡은 사명이 적든, 크든 자신과 사람을 바라보지 않고 언제나 하나님을 바라보고 최선을 다합니다. 충성된 자의 표본은 작은 일에 충성입니다. 마25:23절에 보면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주님께서 친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작은 일에 충성한다는 것은 자기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한다는 확실한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충성된 자의 자세는 세례 요한과 같아야 합니다.
요3:30절에 보면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고 했습니다. 세례 요한 같이 주님만을 위해서 그리고 희생 정신으로 일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신실한 종은 언제나 겸손해야 합니다.
행20:19절에 보면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겸손할 때에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을 들을 때에 감사히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더 큰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말씀에 은혜가 됩니까?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은혜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4세기 로마의 감독 Ambrose는 자기 나라 황제 ‘데오도시우스’를 책벌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그 황제는 8개월 동안 궁중에서 근신하며 통회하고 자복하였다고 합니다.
후에 나이 많이 세상을 떠날 때에 ‘암브로스’감독의 팔에 안기워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그는 황제였지만 낮아지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를 높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성 에브라임은 감독으로 택정함을 받았을 때 그는 그 영광스러운 직분을 사양하기 위하여 미친 체 하였다는 우스운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리고 설교 가로 유명한 ‘크리소스톰’은 역시 감독으로 피택되었을 때 도망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쫓아가 그를 결박하여 수레에 태워다가 감독으로 세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바로 겸손을 말합니다.
지나친 사양도 교만이 되겠지만 일단 직분을 맡게 되면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그리고 황송한 마음으로 직분에 조심스럽게 충성할 때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그와 함께 하시되 지혜와 능력으로 역사 하시는 것입니다.
골1:7-8절에 보면 “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종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그는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 성령 안에서 너희 사랑을 우리에게 고한 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꾼은 모든 일에 착하며, 모든 일에 의로우며, 모든 일에 진실해야 합니다. 그리고 화평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께서 본을 보여 주셨는데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희생과 겸손과 희생의 덕을 소유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직분은 겸손의 멍에요, 온유의 멍에요, 순종의 멍에입니다.
우리에 맡겨 주신 이 귀한 직분을 잘 감당할 때에 우리 하나님께서 내 자신과 자녀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에바브라’와 같이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교회에 유익을 주며 그래서 하나님 앞에 인정받고 복을 받되 자자손손 창대하고 번성할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복된 일꾼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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