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6장 1절~4절
제목: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 – 자발적 타락과 떠나시는 하나님의 영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새벽에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창세기 6장 1절부터 4절까지입니다.
이 말씀은 홍수 심판 이전, 하나님께서 인간의 타락을 어떻게 보셨는지를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본문입니다.
짧은 본문이지만 깊고 무거운 의미가 담겨 있어, 묵상할수록 가슴이 뜨거워지고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 1.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
말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하고 딸들이 태어났더라.”
이 자체는 하나님의 명령, 즉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말씀의 성취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표현에서 분위기가 급격히 달라집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은지라.”
여기서 우리는 제일 먼저 이 질문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누구인가?
이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있습니다.
고대 유대 전통에서는 이들을 타락한 천사들로 보았습니다.
신약 성경의 유다서와 베드로후서도 이를 반영하고 있지요.
그러나 많은 전통적 해석, 특히 아우구스티누스나 칼뱅 같은 신학자들은
이들을 경건한 셋의 자손들로 보았습니다.
문맥적으로도 이 해석이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창세기 4장에서는 가인의 계보가,
5장에서는 셋의 계보가 나오고,
6장에서는 이 둘이 섞이기 시작하는 겁니다.
즉, “하나님의 아들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구별된 삶을 살았던 셋의 자손들이고,
“사람의 딸들”은 세속화된 가인의 후손들이라는 것이지요.
처음엔 분명히 믿음 안에서 구별된 삶을 살았지만,
세월이 흐르며 세상의 문화와 화려함, 외모의 아름다움이 눈을 사로잡았고,
점점 믿음의 정체성이 흐려져서 세상과 타협하게 된 것입니다.
🔍 2. 왜 ‘하나님의 아들들’만 능동적으로 표현될까?
여기서 아주 흥미롭고 신학적으로 깊이 있는 질문이 생깁니다.
왜 성경은 “사람의 아들들이 하나님의 딸들을 아내로 삼았다”고 말하지 않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아내로 삼았다”**고 말할까요?
이건 단지 성별의 문제가 아닙니다.
성경은 죄의 원인을 외부에 두지 않고,
항상 죄를 자발적으로 선택한 사람에게 책임을 묻습니다.
창세기 3장에서 타락은 하와가 먼저 범죄함으로 시작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담에게 책임을 묻지요.
왜입니까?
그가 언약의 대표자, 영적 책임자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자들,
진리를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대로 여자를 아내로 삼았다는 건,
유혹이 아니라 자발적 타락이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죄는 상황이나 환경이 아니라, 내 안의 의지적 선택에서 시작된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약 1:15)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백성도, 하나님의 자녀도,
원할 때 죄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건,
그 죄의 선택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
하나님의 영이 떠나시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 3. “내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이제 본문의 중심 구절로 가봅시다.
“내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120년이 되리라.” (6:3)
이 말씀은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는 구절입니다.
이건 과연 하나님의 판단입니까? 아니면
사람이 너무 타락해서 성령이 머물 수 없게 되었다는 진술입니까?
답은 이렇습니다.
둘 다 맞습니다.
히브리어 원문에 사용된 “야돈(יָדוֹן)”이라는 단어는
‘중재하다, 주장하다, 간섭하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더 이상 사람 안에 머물며,
그들을 설득하거나 감화하거나 다투지 않겠다는 겁니다.
이건 단지 사람이 영적으로 더러워졌다는 진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제 나는 그들을 그냥 내버려 두겠다”**는
주권적이고도 단호한 선언입니다.
이 말씀은 신약의 로마서 1장과 연결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내버려 두사…” (롬 1:24)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심판의 시작입니다.
폭풍이 몰아치기 전에, 가장 무서운 건 바람이 멎는 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간섭하지 않으시는 것,
그게 진짜 무서운 심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예배 자리에 앉아 있어도,
기도 시간을 가져도,
말씀이 들리지 않고,
회개가 느껴지지 않으며,
하나님 앞에서 마음이 무감각해져 있다면,
그건 아주 심각한 영적 사인입니다.
그건 혹시,
하나님의 영이 조용히 물러서신 상태는 아닐까요?
🌊 4. 네피림과 세상의 명성
본문 마지막에는 ‘네피림’이 나옵니다.
이들은 고대의 용사들이었고, 세상에 이름난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노아를 기억하십니다.
그는 조용하고 무명의 인물이었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자였습니다.
세상은 능력을 자랑하고, 외모를 치장하며,
성공과 명성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룩과 정직, 믿음을 찾으십니다.
🔚 결론: 떠나시는 하나님의 영 앞에서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누구를 바라보고 살아가고 있는가?”
“세상의 아름다움인가, 하나님의 말씀인가?”
“나는 지금 성령이 머물 수 있는 그릇인가, 아니면 영이 떠나가신 사람인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죄는 내게 들어오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선택하여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더 이상 말씀하지 않으시는 날이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이 새벽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습니다.
지금이 회개의 시간이고,
지금이 하나님의 영을 다시 구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 아침, 우리에게 귀한 말씀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아름다움에 끌려 스스로 죄를 선택했던 우리의 삶을 회개합니다.
주님, 이제 저희 안에 다시 주의 영이 거하시기를 간구합니다.
하나님 없는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믿음을 좇게 하소서.
성령님, 떠나지 마소서.
우리가 정결한 그릇 되어 다시 주님을 모시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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