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창세기 5장 1절–20절
2025. 3. 26. 소토교회 아침기도회 설교
창세기 5장은 아담의 계보가 길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담부터 시작해서 셋, 에노스, 게난, 마할랄렐, 야렛까지 이어지는 긴 족보입니다. 얼핏 보면 단순히 누가 몇 세에 누구를 낳았고, 몇 년을 더 살고 죽었다는 기록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족보를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중요한 패턴이 반복됩니다. 바로 “죽었더라”는 표현입니다. 사실 이들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만큼 장수했습니다. 어떤 이는 912세를 살고, 어떤 이는 905세를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론은 똑같습니다. “죽었더라.”아담도, 셋도, 에노스도, 게난도… 다 죽었습니다. 이 짧은 말 한마디가 이들의 삶을 마무리합니다.
“사람은 도대체 얼마나 살면 ‘나는 이 세상에 더 이상 미련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종종 삶에 미련이 많습니다. 건강, 가족, 명예, 하고 싶은 일… 하고 싶은 거 다해보고 살다가 원없이 이 세상을 떠나면 좋겠다. 하지만 사람들의 바람처럼 원없이 살다 죽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5장의 사람들은 수백 년을 살고도 결국 죽었습니다. 장수한다고 인생이 완성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삶의 길이를 늘리는 것이 삶의 의미를 채워주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 무엇을 위해 살았느냐”입니다.
셋의 자손들은 단순히 오래 산 사람들이 아닙니다. 창세기 4장 26절을 보면,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기도하며, 공동체적으로 신앙을 회복하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즉, 이 족보는 믿음의 계보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앞서 4장에는 가인의 계보가 이어집니다. 그런데 이들을 어떻게 설명합니까? 성을 쌓고, 이름을 남기고, 여러 문명의 창시자가 되었다, 힘이 정의가 되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었다 등 그들의 업적을 하나하나 거론합니다. 이들의 모습은 화려하고 대단해보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없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셋의 후손을 거론할 때는 세 가지가 반복됩니다. ‘그들은 오래 살았다. 자손을 낳았다. 그리고 죽었다.’ 그리고 여기 중요한 한 가지가 전제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
이 믿음의 사람들도 결국 다 죽었다는 것입니다.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일까요? 이에 대해 로마서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롬 5: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그렇다면 이들은 죽음을 극복하지 못한 자들일까요? 아닙니다. 육체적으로는 죽었지만, 하나님을 믿음으로 살았기에, 하나님 안에서 산 자들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은 그들의 믿음을 증언합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마 22:32)
이쯤에서 우리는 질문하게 됩니다. “창세기 5장의 인물들은 부활신앙을 갖고 있었던 것일까?”
신약처럼 천국과 부활을 명확히 알지 못했던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구약의 신앙인들은 자손을 통해 자신의 삶과 신앙이 이어지는 것에서 부활의 희미한 소망을 품었습니다.
이를 두고 독일 구약신학자 게르하르트 폰 라트는 “자손을 통한 생명의 계승이 구약의 역사적 부활 개념이었다”고 설명합니다. 월터 브루그만은 “하나님께 기억되는 자는 죽어도 산 자”라며, 공동체 안에서의 언약 계승이 부활의 전조라고 해석했습니다. 또한 존 골딩게이는 자손을 통한 이름과 신앙의 계승이 구약 시대의 부활 소망의 전형적 형태라고 말합니다.
즉, 이들은 육체의 부활은 몰랐지만 하나님과의 언약이 자손을 통해 계속된다는 사실 안에서 부활의 그림자를 보았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자녀에게 신앙을 물려주고, 다음 세대에게 믿음을 전수하는 것, 이것이 곧 구약 신앙인의 부활 신앙의 실천이었습니다. 이 땅에서의 내 삶은 끝나도, 하나님의 언약은 계속되고, 그 언약은 다시 나를 기억하게 합니다. 그래서 중요한 건 내가 얼마나 살았느냐보다, 무엇을 남겼느냐, 누구를 통해 그 신앙이 이어지고 있느냐입니다.
셋의 자손들처럼 우리도 믿음의 족보 속에 이름을 올리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죽음을 지나 영원한 생명을 향해 걸어가는 삶. 이것이 복된 인생입니다.
👉 단순히 오래 사는 것보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돌아봅시다.
👉 삶의 마무리를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생각해봅시다.
👉 신앙의 유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의 본을 후손에게 어떻게 보여주고 있는지 생각해보세요.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이 아침도 저희를 말씀 앞으로 부르셔서 짧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셋의 자손들이 장수했지만 결국 죽었고, 그러나 하나님을 믿음으로 살았기에 죽었으나 살아 있는 자가 되었음을 기억하게 하소서.
저희도 하나님 없이 오래 살기보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하루를 선택하게 하시고, 그 하루하루가 믿음의 족보 속에 기록되는 귀한 생애 되게 하소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바라보며 오늘 하루도 정직하고 담대하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by 박동진 목사(소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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