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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엘 2:21, 감사하며 삽시다 _김창인 목사 설교

감사하며 삽시다

본문 : 요엘 2: 21-3: 3

설교 : 김창인 목사(광성교회)

 

 

오늘 본문 말씀을 간단히 줄이면 “감사의 생활”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나왔던 열 문둥이가 주님의 은혜를 입어서 깨끗함을 받았다고 하는 사건을 너무나도 잘 압니다. 한 번 문둥병에 걸리면 고치지 못하는 병이요 또 쫓겨나서 방황하다가 죽으면 송장도 안 찾아갑니다. 완전히 버림받는 그런 불행한 병입니다. 그런데 열 사람이 주님께 고침 받고 깨끗함을 얻었는데도 아홉 사람은 전혀 주님께 나타나지도 않고 감사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오직 사마리아 사람, 즉 이방 사람 하나가 예수님께 돌아와서 진심으로 감사하더라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감사를 받으시고 하나님께 영광 돌렸다고 선언하시고 기뻐하셨습니다. 동시에 아홉 사람은 어디 갔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사실은 섭섭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아홉 사람은 왜 감사를 하지 아니하였고 이방인 한 사람은 어째서 감사를 했습니까? 여러 가지 이유를 찾겠습니다만 그 아홉 사람은 유대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은 생각하기를 하나님께 이런 은혜를 입고 사랑을 받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한 겁니다. 나는 당연히 받을 것을 받았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내가 왜 감사해야 되느냐는 자세입니다. 우리가 우리 생활 중에서도 내가 그저 당연히 받을 것 받았다고 생각하면 아무리 잘해줘도 감사할 줄을 모릅니다. 자식들을 보십시오. 어머니가 나를 위해 당연히 희생해야 되고 당연히 나에게 줘야되고 나는 당연히 받을 것을 받았는데 뭐가 감사할게 있느냐고 생각하는 자식에게는 아무리 잘 해주어도 감사가 없지 않습니까? 더 잘 안 해준다고 불평할 뿐입니다. 그러나 이 사마리아 사람은 이방인으로서 이런 은혜를 받을, 즉 이런 특별한 축복을 받을 자격이 없는데도 이렇게 받았구나 하고 생각해보니 한 번을 해줘도 감사, 두 번을 해줘도 감사, 그저 감사일뿐입니다. 그러기 까닭에 우리가 오늘 하나님을 향해서 당연히 우리가 받을 것을 받았다는 이 자세와 생각으로 살아가면 감사를 모릅니다. 우리는 부족하지만 또는 자격이 없지만 이렇게 온갖 축복을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라는 자세와 마음으로 살아가자는 말입니다. 오늘의 본문에 보게되면 어떻게 또 무엇을 감사할 것인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상고해 보겠습니다.

 

  1. 복을 감사(21-27)

예를 하나 들어보면, 솔로몬은 이스라엘의 세 번째 왕입니다. 그 명성은 천하를 떨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그의 부귀영화는 황금시대의 번영을 그대로 반영하는 실상이었습니다. 세상에서 그 어느 왕조에 비교할 수 없는 영화였습니다. 그에게는 다른 형제가 많았기 까닭에 왕으로 등극하기까지는 아주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왕위에 오른 뒤 얼마까지는 하나님께 감사했고 온갖 충성을 다했고 신앙생활에 열중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왕권이 확립되고 자기의 명성이 천하를 떨치고 부귀영화는 하늘에 닿았습니다. 이쯤 되자 더 이상 아쉬운 게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즉 사람이 달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때부터 솔로몬의 목에 힘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딴사람이 되더라는 겁니다. 솔로몬이 이스라엘에서 제일 아름답다고 하는 여자들을 왕비와 궁녀로 삼고 그것도 모자라다 싶어 이방의 많은 여인 곧 모압과 압몬과 에돔과 시돈과 애굽에서 여자들은 끌어들여 후비가 700명, 빈장이 300명, 합계 1천명이었습니다. 천명의 여자를 왕궁에 거느리고 살았습니다. 이때부터 하나님을 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이방여자들이 이스라엘 왕궁으로 올 때 하나같이 자기들의 우상을 가지고 오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왕궁의 방방이 다 우상의 소굴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것뿐입니까? 그 여자들을 기쁘게 해주려고 예루살렘에 조금 높다는 곳에는 전부 우상의 전각을 지어주었습니다. 이곳을 멸망산이라고 합니다. 나중에는 그 여자들이 솔로몬의 마음을 돌이켜서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열심히 섬기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노여워하시는지, 그 당대에는 다윗을 위해서 참으셨지만 그 아들 대에 가서는 나라를 갈라놓고 말았습니다. 솔로몬은 세상일에 혹은 사업에는 성공했다고 할지라도 신앙만은 완전히 실패한 사람입니다. 오히려 그의 명성이나 부귀영화가 화근이 되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세상에서 잘된 것이 오히려 신앙에는 적자요인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변질되었다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몇 가지를 배우게되는데 첫째로는 사람이 잘되고 나면 교만해지더라하는 겁니다. 가난하다가 돈푼이 생기니까 교만해지고 낮은 자리에 있다가 제법 사회에 진출해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니까 교만해지고 뭔가 이름이 좀 알려지니까 교만해지더라 이겁니다. 결국 하나님을 몰라보게 되었습니다. 전부 제가 잘나서 잘된 줄로 착각을 합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두 번째로 욕심은 한이 없더라는 겁니다. 왜? 여자 한 명이면 됐지 천명이 뭡니까? 사람의 욕심은 한이 없다는 뜻입니다. 전세를 살다가 아홉 평 아파트 사보십시오. 아홉 평 사면 15평을 바라보고 또 불만입니다. 15평을 사면 또 만족합니까. 그 다음에는 30평을 바라보고 또 불만입니다. 30평을 사면 또 만족합니까. 그 다음에는 50평을 바라보고 또 불만입니다. 사람의 욕심은 온 천하를 다 가지고도 욕심을 채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욕심이 끝이 없다는 말입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고 돌아서면 하나님이 대적을 계속 일으키신다는 교훈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에돔 사람 핫산을 일으키시고 그 다음에는 다메섹 왕 그 다음에 주변의 대적을 일으키셨습니다. 믿음으로 살아야될 사람이 믿음으로 살지 않으면 대적이 자꾸 일어난다는 교훈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가지 아셔야될 것은 솔로몬이 이렇게 온갖 축복을 다 주실 때에 감사하며 살았어야 했습니다. 감사할 줄 모르고 제 잘난 맛에 살다가 이렇게 혼이 났습니다. 그러기 까닭에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 주신 축복을 하나 하나 세어가며 찾아가며 감사의 생활을 해야합니다.

본문의 내용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적당히 주시면서 얼마나 축복해주셨습니까? 해마다 풍년이 들었습니다. 나라는 태평성대를 이루었고 뭔가 아쉬움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하나님 없이도 얼마든지 살아간다고 교만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하나님과 점점 멀어졌습니다. 그 다음에는 자기네들 다 잘난 탓에 살아가는 듯이 착각을 해버리니까 하나님께서 메뚜기 재앙을 보내, 농사를 망쳐놓았습니다. 농사도 금년에 풍년이 들었다했는데 하나님이 메뚜기를 보내시니 먹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메뚜기 재앙이라는 것을 모르지만 중동지방에는 메뚜기 재앙이 아주 큰 재앙입니다. 구름 떼 같이 새까맣게 몰려와서 한 번 지나가면서 농작물을 모두 뜯어먹고 농사는 완전히 망치고 마는 겁니다. 그 해 농사는 온전히 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백성들이 그게 아니었구나 라고 깨닫게 되면 문제가 달라진다는 겁니다. 지난날에 하나님이 축복해주실 때 우리가 잘나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움으로 잘 되었었구나! 하고 깨닫고 회개하고 하나님의 축복했었던 것을 감사했더니 더 주시고 메뚜기가 먹어 손해본 것을 모두 갚아 주신다는 것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결국 마당에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쳤습니다. 하나님이 축복해주실 때 감사하고 또 감사할지라도 아쉬운 게 없다하여 제가 잘난 덕 인줄로 착각하면 오히려 그 복은 화근이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축복으로 알고 감사하며 살아야 된다는 내용입니다. 스펄전이라고 하는 유명한 영국의 목사는 별빛 같은 은혜를 감사하면 달빛 같은 은혜를 주시고 달빛 같은 은혜로 감사하면 햇빛 같은 은혜를 주시며 그 다음에 햇빛 같은 은혜를 감사하면 천국의 영광을 죽어서가 아닌 살아서부터 누리게 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축복을 늘 감사하며 사는 자에게 더 주시고 더 주십니다. 그러나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주셨던 것도 빼앗는다고 하는 것이 성경임을 알아야 합니다. 한 달란트 맡았던 종이 바로 그 장본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감사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2. 은사를 감사(18-30)

여기서 은사란 성령 충만을 가리킵니다. 즉 일꾼 됨을 감사하며 살자는 말입니다. 성령충만을 받아야 일꾼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디에 내세워도 자랑할 만한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어디가나 쫓겨다니는 일꾼이 되면 어디에 쓸 겁니까? 아무 데도 소용이 없어서 이리저리 쫓겨다니는 사람이라면 존재가치가 의문입니다. “뽑혀 가는 사람”은 장한 사람이라 해도 좋습니다. 그러면 저 사람은 왜 뽑혀가고 이 사람은 왜 쫓겨가느냐는 말입니다. 그것은 실력이 있기에 뽑혀가고 실력이 없으면 쫓겨나는 겁니다. 또 요즘 실력이 있어서만 뽑아 가는 줄 아십니까. 실력도 중요하지만 그 사람의 인품이 더 중요합니다. 즉 너와의 조화를 이루어 화평케 하는 사람인가? 가 문제입니다. 직장에 도움이 되고 덕이 되고 유익이 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긍정적이요 건설적이요 창조적인 일꾼이어야 합니다. 실력이 있고 또 도움을 주고 함께 화합을 이룩할 때 훌륭한 일꾼이 됩니다. 여하간 뽑히는 일군이 버림받는 사람 보다 얼마나 감사할 일 입니까? 우리가 영적으로 하나님 보실 때 실력 있는 사람으로 하나님이 쓸 수 있는 일꾼이 되었다고 하게 되면 큰 회사에 뽑혀 가는 것 보다 더욱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성가대를 시립 교향악단에서 보면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시립 교향악단 보다 성가대를 더 귀하게 보실 겁니다. 우리 성가대는 믿음으로 심령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그 영혼의 찬송이기에 하나님께 영광되고 믿는 사람에게는 은혜가 됩니다. 세상의 그 어떤 악단과는 달리 하나님이 뽑아 세운 성가대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시립교향악단원이 된 것도 영광일수 있지만 광성교회 성가대원이 됐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할 일이요 자랑인지 모릅니다.

한가지 예를 더 들어보면 대학교 교수가 되는 것이 큰 영광이요 자랑인 것도 틀림없지만 우리 광성교회 성경반 교사가 되어 구원사역에 종사하는 것을 하나님이 더 기뻐하실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내가 성경을 알고 믿고 또 믿는 바를 가르쳐서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양육하는 성경교사를 대학교 교수보다 더 기뻐하시는 일꾼일수도 있습니다. 또 우리 교회학교 1학년부 교사는 초등학교 교사처럼 월급을 받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교회학교 교사라는 직분을 소홀히 여길 수도 있으나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얼마나 귀한 직분인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뽑아서 쓰시는 일꾼이 됐다는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성경교사를 당회장이 임명은 해도 사람이 뽑아 쓰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교사를 누구나 하는 겁니까? 또 성가대를 누구나 하는 겁니까? 영적으로 실력을 갖추었을 때 하나님께서 당회장을 통하여 뽑아 쓰는 겁니다.

본문 28절에서 30절까지를 보면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또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줄 것이며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라는 말씀은 예언을 의미합니다. 그렇다고 이 예언을 요즘 가정제단에서 예언기도 해주는 것과 혼동하면 안됩니다. 점을 치러 다니듯 예언기도를 받으러 다니는 것은 절대 금할 일입니다. 성령은 점치는 귀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언이란 장래 일을 말하는 것인데 가령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는 선포가 곧 예언입니다. 결국 본문에서 말하는 예언은 설교라고 생각하시면 가장 정확합니다. 그러므로 설교는 하나님의 신의 감동을 받아 선포하는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입니다. 즉 선포되는 말씀이 예언입니다. 결국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은사중의 하나가 설교입니다. 그 은사를 받은 자가 설교자요 하나님이 뽑아 쓰시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라는 말씀은 영적으로 성숙했다는 뜻입니다. 지금까지는 땅에 것 즉 돈 몇 푼에 울고 웃고 제 자리가 한자리 내려가고 올라가는데 울고 웃고 하는 것이 전부였는데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보니 하늘의 세계가 보이고 차원이 달라진다는 그 말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라고 하는 말씀은 하늘과 땅에 기적이 나타난다. 능력이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영적 실력의 충만으로 기적 같은 능력이 나타나게 됨을 의미합니다. 이런 사람을 일꾼으로 내세우면 천하가 감당 못하는 일당 백, 일당 천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계를 향하여 바울처럼 복음 들고 나가지 못하고 멀리 가서 이방 사람을 구원하지 못하나 우리들의 집 근처에 다니면서 열심히 전도하는 사람으로 쓰임 받기를 바랍니다. 내가 정말 시립교향악단 단원이 못되더라도 광성교회 성가대원, 교회학교 교사, 성경반 교사로 쓰임 받기를 바랍니다. 또 구역을 돌보는 구역장이나 권찰로 하나님께서 써주시는 것을 감사하며 충성해야 합니다. 단 조건은 성령 충만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써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나를 일꾼으로 삼아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3. 구원을 감사(31-32)

본문을 상고하면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 이라고 하였는데 이 날은 심판의 날입니다. 그 심판의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말세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날이 이르기 전에 믿는 사람을 먼저 구원하신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을 하나님이 분명히 심판하는데 이 세상 심판하기 전에 교회 안에서 먼저 쭉정이와 알곡을 갈라놓습니다. 농사지어 곡식을 거두어드리고 보면 알곡이 있고 쭉정이가 있습니다. 그것을 함께 곡간에 두지를 않습니다. 반드시 갈라놓습니다. 이처럼 교회 안에서 쭉정이 교인을 먼저 갈라놓습니다. 쭉정이는 불에 태워 버립니다. 교회 안에도 알곡 신자만 있으면 좋겠지만 쭉정이 교인들도 있습니다. 쭉정이는 겉은 멀쩡한데 속이 비어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겉만 멀쩡해서 교회당에는 출입하지만 속은 완전히 비어있습니다. 즉 그 속에는 말씀이 없고 은혜가 없고 성령이 없는 형식적인 교인입니다. 이런 쭉정이를 갈라놓은 다음에 쭉정이 교인을 세상과 함께 심판하십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4장17절에 보게되면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라고 말씀하지 않습니까? 에스겔서 9장 6절을 보게되면 심판하는 천사들이 살육하는 기계를 갖고 등장합니다. 먹 그릇을 찬 서기관이 예루살렘 거리를 다니면서 이마에 표를 합니다. 그가 표하기를 끝내자 하나님은 천사들에게 심판을 시작하라고 명하십니다. 이마에 표 받은 사람은 절대 건드리지 말라는 겁니다. 구원 얻을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표를 받지 못한 사람은 전부 심판해 버리라고 하십니다.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는데 그 중에서도 성전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성전에서도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합니다. 이것이 알곡 중에서 쭉정이를 갈라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알곡 신자가 되어 하늘나라 곡간에 다 들어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알곡이란 겉을 갖추고도 속이 충만한 것입니다. 이처럼 속에는 하나님의 영이 충만하고 은혜가 충만하고 말씀이 충만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 즉 환란 시대에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죽기 아니면 살기로 믿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전부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 되었다 또는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되었다고 하는 것은 세상의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영광으로 알아 죽을 때까지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4. 기업 됨을 감사(3:1-)

본문에 그 날 곧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의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할 그때에 내가 만국을 모아 데리고 여호사밧 골짜기에 내려가서 내 백성, 곧 내 기업된 이스라엘을 위하여, 거기서 그들을 국문 하리니, 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몇 주일 전에는 이런 설교를 했습니다. 우리는 믿음을 본업으로 하고 우리의 생업을 부업으로 합시다 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부업으로 성공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즉 부업에 성공과 실패의 운명을 거는 사람은 없습니다. 항상 본업에 자기의 운명을 걸고 전력투구합니다. 생업을 본업으로 하고 믿음을 부업으로 하는 신자는 이미 신자이기를 포기한 사람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믿음이 본업이 돼야합니다. 그래서 믿음을 본업으로 삼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업으로 생각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투자를 합니다. 이런 사람의 믿음은 성공하고 인생도 성공한다고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향해서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라고 제법 잘 고백합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그와 반대로 말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택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는 내 백성 곧 내 기업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본업으로 삼았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가령 구멍가게나 혹은 회사를 차려 운영하는 것이 중요합니까? 그렇지 않으면 아들, 딸들을 훌륭히 키우는 것이 중요합니까? 아들, 딸들이야 어찌되었든지 회사만 크고 돈만 벌면 다 되는 겁니까? 우리가 넉넉한 생활이 아닐지라도 아들, 딸들이 잘되는 것이 오히려 복이요 성공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아들, 딸들을 위해서 돈을 벌어야 하고 사업을 위해서 아들, 딸을 두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의미에서 자녀는 그 가정의 기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자녀의 성공은 부모의 성공이요 자녀의 실패는 부모의 실패입니다. 자녀는 부모의 기업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를 향하여 내 백성 곧 내 기업이라고 하신 것은 놀라운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기의 기업 된 우리들에게 온갖 것을 투자하여 키우십니다. 자기의 기업이 망하기를 바라는 사람이 없듯이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이 망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성공하도록 모든 면에서 돕고 키우시는 분이십니다. 이런 이유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기업 됨을 감사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요엘 선지자는 때를 따라 적당하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감사하며 살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우리는 하나님의 각양 은사를 감사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동시에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을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기업 됨을 감사하며 살아야

코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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