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런 황망한 소식을 접하고
목사님께서 시시로 올려주신 사진을 찾아 목사님의 얼굴을 확대해 보았습니다.
세월의 흔적을 피할 수 없었지만 목사님은 여전히 순박하게 웃고 계셨습니다.
단 한 순간도 근엄하거나 무표정한 모습 없이
한 결 같이 천진하게 미소를 머금고 계신 모습이셨습니다.
그 미소는 분명 속에서 피어오른 미소임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목사님은 안과 밖이 같은 분이셨습니다.
천성이셨습니까?
아니면 예수님을 만난 후 그렇게 변하신 것입니까?
목사님은 대상을 불문하고 전혀 사심 없이 대해주셨습니다.
누구나 이해관계나, 속셈으로 차별하지 않으셨습니다.
누군가의 눈치도 보지 않고
다만 주님께서 주신 감동을 따라 말하고 행동하셨기에 야릇한 눈총을 받기도 하셨습니다.
큰 어른이셨지만 언제나 겸손한 모습을 잃지 않으셨기에
오히려 송구할 때가 많았었습니다.
목사님과의 첫 대면을 추억해보았습니다.
22년 전, 목사창단 첫 해외 연주지 였던 태국에서 여장을 풀기 위해 기다리던 중
‘베이옥호텔’입구에서 쉼 없이 몸을 움직이시는 목사님께 다가가 이유를 물었을 때
심장 수술을 하고 언제 심장이 멈출지 모를 만큼 건강이 약해져서 그렇게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말씀과 함께 월남 파병 종군기자 이야기, 유신 철패를 외치다 옥살이 한 얘기, 고문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얘기 등.. 짧은 시간에
목사님은 인생 스토리를 거의 들려주셨습니다.
그 후로도 목사님은 인생담을 수 없이 들려주셨고
보잘 것 없는 후배를 그렇게 아껴주시고 귀하게 여겨주셨습니다.
목사님을 생각하면 예수님이 생각납니다.
목사님을 생각하면 “천국은 이런 자의 것 이니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세상은 이해 못하고, 감당 못할 만큼
그래서 마치 바보처럼 순진하게만 보이셨던 목사님은
일일이 거명할 수도, 열거할 필요도 없이
남아있는 우리를 부끄럽게 하시고 가셨습니다.
목사님의 부음 소식을 듣고 스쳤던 마음입니다.
무엇이 담겨있는지 치렁치렁 가방을 둘러매고 동분서주하시는 목사님을
하늘 아버지가 바라보시고 안타까이 여기셨나보다!
하늘 아버지께서 그만 쉬게 하고 싶으셨나보다!
에녹을 만나면 하나님이 너무 좋아서 매일 불러내 만나시더니
어느 날 “에녹아 내 집에서 나랑 함께 살자!”며 그를 불러 가셨던 것처럼
그렇게 목사님도 불러가셨나 보다!
고한규 목사님,
목사님이 황망하게 떠나시자 목사님을 더 잘 모셔야 했었다는 후회만 남는 중에
작년 11월 후배의 이름을 새겨 목사님의 공로를 기리는 패를 만들어 드린 것이
그나마 얼마나 다행이었는지를 회고하며 위안을 삼습니다.
목사님이 보여주신 그 순수하신 섬김의 자리에서 목사님의 뒤를 따라 가겠습니다.
고단했던 육신의 짐 벗으셨으니 주님 품에서 안식을 누리시다가
이 다음 여전히 천진하게 맑고 밝은 모습으로 뵙기를 바랍니다.
2022년 7월 18일
한국목양문학회 직전회장 후배 박상기 목사